강원 고성 산불피해 현장
"미술품 수백점 모두 불타"

"불덩어리가 날라 다녔어요"

김남권 | 기사입력 2019/04/10 [10:39]

강원 고성 산불피해 현장
"미술품 수백점 모두 불타"

"불덩어리가 날라 다녔어요"

김남권 | 입력 : 2019/04/10 [10:39]

 

▲ 지난 4일 발생한 강원 고성군 산불이 속초시내로 옮겨 붙은 모습     © 김남권

 

 

고성 산불이 발생한 다음날인 5일 오전, 발화지점 인근 마을인 강원도 고성군 원암리로 향했다.


이 곳은 행정구역상 고성 지역이긴 하지만 지리상 설악산 미시령 아래에 위치해 속초시와 행정구역이 맞닿아있는 곳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설악 한화리조트와도 가깝다. 고성서 발화된 산불이 속초시로 쉽게 옮겨 붙은 이유를 알 수 있다.

 

 

▲ 산불이 발생한 강원 고성군과 속초시 구역 표시 지도, 위 그림에서 가운데 빨간선이 고성군과 속초시를 나누는 경계표시다.     © 김남권



원암리 사거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불에 타 군데군데 구조물이 떨어진 단층 택배회사 건물이었다.

 

▲ 강원 고성군과 속초시 학사동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원암리4거리에 위치한 택배회사 물류센터 건물이 전소했다.     © 김남권

 

 

원암리 마을로 가기 위해 속초시 노학동(일명 학사평 콩꽃마을) 국도에 접어들자, 주유소와 붙어있는 '부부촌 할머니 순두부' 식당이 간판 형채만 남은 채 전소돼 소방관들이 재발화를 막기 위한 잔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 4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속초시 학사동 할머니순두부 식당, 바로 옆에는 주유소가 위치해 있다.     © 김남권

 

 

원암리 마을회관이 있는 작은 삼거리에 가까이 가자 불에 탄 주택들과 아직까지 연기나 나고 있는 가옥들이 여기저기 눈에 띠었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불에 탄 주택에는 불에 탄 농기계와 승용차들이 앙상한 뼈대로만 남아 마치 영화에서 보는 전쟁터를 현실에서 보는 듯했다.

 

▲ 강원 고성군 원암리 버스 정류장     © 김남권

 

 

오후 1시가 지나자 긴급 대피했던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와 불에 탄 집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 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 A씨(76)씨는 불에 탄 가옥을 바라보며 "죽고싶다"고 말했다. A씨는 "어제(4일) 저녁 8시 경 타는 냄새 때문에 밖을 나와보니 마을 주변이 온통 불바다여서 겨우 불길을 뚫고 빠져나가 대피소로 지정된 아차산초등학교로 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도 못가져 나오고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이 전 재산이 돼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안암리 한 주민이 불탄 집에 돌아와 "죽고 싶다"며 기자에게 하소연 하고있다.     © 김남권

 


바로 뒷집 역시 화재에 전소 됐다. 마당에는 불에 타버린 자동차와 올봄 농사에 쓰일 비료들이 시커멓게 변해 놓여 있었고,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주택은 모두 녹아 내렸다.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안암리 마을 한 주택이 산불로 전소됐다. 마당에는 올 봄 농사에 쓰일 비료들이 쌓여있고, 미쳐 대비 시키지 못한 승용차가 불에 탄 채 앙상하게 남아있다.     © 김남권

 


인근 축사를 운영했던 B씨(40)씨도 초등생 자녀 2명과 화재 당일 저녁에 긴급 대피했다 돌아왔다. B씨의 친정 어머니는 "96년 고성 산불 피해를 입었는데 두번째 화재를 당했다"면서 망연자실했다. B씨는 "어제 저녁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고 있는데 초등학생인 아들이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산불이 난 걸 알았다"고 말했다. 축사옆에는 트렉터가 불에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 강원 고성군 토성군 원암리 한 축산농가가 불에 모두 탔다. 대피했던 가족들이 돌아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 주민은 두번째 산불 피해를 봤다고 했다.     © 김남권

 

▲ 강원 고성군 토성군 원암리 한 축산농가에 트랙터가 불에 탄 채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있다.     © 김남권

 

불에 모두 타버린 주택 마당 한켠에는 털이 시커멓게 그을린 강아지 혼자 엎드려 있었다. 길어야 1.5m정도로 보이는 짧은 목줄이 쇠기둥에 매여있는 상태였다. 주인이 급박하게 대피하느라 미쳐 신경쓰지 못한 것이다. 기자가 다가가자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나왔다. 강아지 집 바로 옆까지 불에 탄 흔적이 보인다. 목줄에 매인 채 불길 속에서 밤새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 짐작이 갔다.

 

▲ 강원 고성군 토성군 원암리 전소된 주택 마당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강아지 한마리가 집에 엎드려 있다가 기자가 다가 가자 꼬리를 흔들며 나왔다     © 김남권

 

화마가 쓸고 간 이 마을에서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한 조영식(남, 60)씨를 만났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화가라고 소개한 그는, 모두 타 버린 주택 안에서 잔불제거 작업이 한창인 소방관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산불로 거주지인 2층 주택과 바로 옆 화실을 잃었다. 그의 첫 마디는 "외할아버지가 그린 국보급 그림들이 모두 타 버려서 이를 어찌 할지 모르겠다"며 망연 자실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1964년 한국미술협회 회장과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을 수상한 변관식(1899~1976)화가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장춘색>이 있다.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안암리 조영식(남,60)씨, 외할아버지때부터 3대가 화가인 화가 집안이다. 조 씨는 이번 화재로 국보급 작품인 외할아버지 변관식 화가의 작품을 하나도 꺼내지 못하고 모두 태웠다며 안타까워했다. 조 씨는 화가인 아들도 전시회를 위해 수백점을 그렸는데 이것도 모두 타버렸다고 했다.     © 김남권

 

이번에 모두 녹아내린 40평 남짓의 화실은 그가 평소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미술작품 100여 점을 보관해 온 곳이었지만 작품 하나 꺼내지 못하고 모두 소실됐다.

 

그는 "아들도 화가인데 이번에 전시회를 앞두고 있어 준비하느라 몆달동안 준비한 작품이 모두 허무하게 타 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미술품이 보관되어 온 화실이 쉽게 타 버린 것은 일명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진 조립식 건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전소된 조영식(남,60)씨 화실에서 소방관들이 잔불 정리를 하고있다.     © 김남권

 

조 화가는 산불이 발생한 4일 저녁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들은 2층에 있었고 나는 1층에 있었는데, 갑자기 타는 냄새와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아들과 화급하게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봤는데, 어마어마한 불덩이들이 바람과 함께 우리집 쪽으로 수백개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어요.

 

마치 사극에 나오는 불 화살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하는 느낌 처럼요. 급히 마당에 있는 상수도를 열어 주택에 불이 붙지 않도록 날아드는 불덩이들을 피하면서 호스로 물을 계속 뿌리고 있는데 바로 옆 화실에 불이 붙어버린 것을 보고 모두 포기하고 피했어요. 차라리 불 끄는 시간에 그림 한점이라도 더 꺼내는 게 나았을 수도 있어요. 이제는 죽어서도 외할아버지를 뵐 면목도 없네요."

 

▲ 조영식(남,60)씨가 모두 타 버린 화실에서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리 저리 뒤져보고 있다.     © 김남권

 

 

이번엔 산 등성이 마을과 다소 떨어진 한 전원주택을 찾았다. 2층 구조 주택은 모두 불에 탔고, 마당에는 미처 옮기지 못한 승용차가 불에 탄 채 썰렁하게 놓여있었다.  아직 집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불에 탄 승용차는 유리가 모두 녹아 내린 상태다.

 

▲ 마을과 조금 떨어진 한 2층 전원 주택이 모두 불 탔다. 마당에는 불탄 승용차가 그대로 있다.     © 김남권

 

▲ 승용차 유리창이 모두 불에 녹아 내렸다.     © 김남권

 

▲ 원암리 한 주택의 불에 탄 트랙터가 서 있다.     © 김남권

 

원암리를 나와 조금 떨어진 속초한화리조트 앞에 위치한 대조영 촬영 세트장을 찾았다. 세트장 정문 맞은편에 있던 화덕피자 체험장도 전소했다. 대조영세트장은 일부 성곽만 남아있고 매표소부터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사라졌다.

 

▲ 원암리를 나와 조금 떨어진 속초한화리조트 앞에 위치한 대조영 촬영 세트장을 찾았다. 세트장 정문 맞은편에 있던 화덕피자 체험장도 전소했다.평소 피지가 구워졌을 화덕의 형채만 보인다. 대조영세트장은 일부 성곽만 남아있고 매표소부터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사라졌다.     © 김남권

 

대조영세트장 대표는 '피해 보상이 나올 경우 세트장 복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여기가 2만 평인데 그건 불가능이고 그냥 모두 다 사라졌다고 보면된다"고 허탈감을 표했다. 세트장이 흔적만 남긴 채 전소된 것은 세트장 특성상 목조로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 속초시 대조영 촬영 셋트장이 성벽만 남기고 전소된 모습     © 김남권

 

▲ 속초시에 위치한 한화리조트 앞 대조영 세트 촬영장이 전소된 모습     © 김남권

 

주민들은 이번 산불은 "옮겨 붙었다는 표현보다는 강한 바람이 불덩어리를 수백미터 밖으로 마구 쏘아대 마치 화염방사기로 집들을 불 태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고성.속초 산불은 발화부터 진화까지 14시간 동안 산림 250ha를 태우고, 8일 기준 고성 713명, 속초 158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지금까지 발생한 산불 화재 중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피해를 낸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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