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대형사건 X파일 2-2]대형사건·사고 온상이었던 영동지역

사건 기사는 발로 뛰어야 살아있는 기사… 팩트는 단순·명확해야

홍창업 논설주간 | 기사입력 2022/12/06 [16:02]

[동해안 대형사건 X파일 2-2]대형사건·사고 온상이었던 영동지역

사건 기사는 발로 뛰어야 살아있는 기사… 팩트는 단순·명확해야

홍창업 논설주간 | 입력 : 2022/12/06 [16:02]

▲ 홍창업 시사줌뉴스 논설주간     ©시사줌뉴스

 

방대한 지역을 취재 권역으로 하는 지방주재기자에게는 차량은 필수품이다. 사진도 직접 촬영했기 때문에 니콘 카메라를 구입했다.그러나 필자는 당시 자동차도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부임하자마자 당시 소형차로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를 신청하고 운전면허증 시험을 동시에 봤다.

 

당시 사천에 경찰에서 운영하던 운전면허시험장이 있었다. 장장(場長)이 경감이었다. 지금은 부끄러운 과거지만 조금의 짜배기(특혜?)가 있던 시절이라 경찰관에게 몇 차례 실기 시험 응시 요령을 훈수받았다. 그런데 매번 오르막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섯 번의 응시 끝에 겨우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그런데 면허도 차량도 없던 그 해 11월 2일  오전 7시 45분쯤 결혼식 하객 42명을 태우고 서울로 가던 관광버스(강원5아5702호/당시 명주군 나라관광)가 추락하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추락지점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 옥녀탕앞 옥녀2교. 이 사고로 승객 19명이 숨지고 2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기자는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 철칙이다. 필자는 사고 현장에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대형 사고라 며칠간 사고 현장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 먼저 카메라와 필기구 등만 챙겨 강릉에서 택시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서 본 관관버스의 모습은 처참했다. 길이가 20여m도 안되고 높이도 1m 남짓한 작은 교량이었는데 물이 메마르고 바위만 가득한 계곡으로 추락한터라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병원과 영안실은 물론, 사고대책본부가 설치된 인제군청과 경찰서 등을 오가며 취재해야 하기 때문에 차량이 필수였다.

 

필자는 택시기사에게 내일까지 대절해야 할 것같은데 얼마를 주면 되겠냐고 물었다. 이틀 동안 지불한 택시비만 38만~40만원으로 기억된다. 택시를 취재 차량 삼아 병원과 영안실,경찰서 등을 오가며 취재를 했다. 그때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이 없던 시기라 취재한 내용을 수시로 아무 곳에서나 전화기를 붙들고 육하원칙에 따라 본사 데스크에게 수시로 보고했다. 

 

필자가 취재한 내용과 연합뉴스 등에 올라온 기사를 참고해 데스크가 기사 완성본을 작성했다. 이 사건은 필자가 강릉에서 첫 경험한 대형 사고여서 기억을 되살려 봤다. 구글에는 그때 필자가 작성한 기사가 아직 남아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추락사고는 단풍철 성수기를 맞아 무리한 운행을 예사로 하고 있던 관광버스 회사의 안전 불감증과 도로시설 미비가 어우러져 빚은 ‘예고된 참사’였다, 경찰조사 결과 사고 버스는 9월 말부터 밀려드는 관광 차량 수요로 쉴틈없이 운행을 계속, 거의 정비를 하지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운전기사의 안전수칙을 무시한 운행도 사고의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당시 사고지점 부근은 시계 20여m에 불과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운전기사는 속도를 줄여 안전 운행을 해야 함에도 시속 50㎞인 운행제한속도를 훨씬 초과한 80㎞ 이상의 과속운행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브레이크 고장마저 발생해 대형 사고로 번진 것이다.

 

사고에 대비한 도로 안전시설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한계령에서 사고지점까지 계속 내리막길인데도 위급시 차를 멈출 적사장이 없어 차를 정지시키지 못해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사고 차량이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키고 암벽에 부딪치자 운전기사와 젊은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매라’고 두차례 소리쳤으나 상당수 승객들이 노약자이어서  미처 안전벨트를 매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내가 강릉에 주재하던 15년동안 발생한 대형 사건·사고는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비행기 추락 사건과 같은 공중전만 겪지 않았을 뿐, 육상전과 해상전을 물론.지하전까지 치뤘다. 아마 그 당시 영동에 주재하던 기자들만큼 중앙일간지 1면이나 사회면 톱을 많이 쓴 지방기자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강릉에 주재하던 15년간 일어난 대형 사건만 대충 나열해 보자.

▶1996년/1998년 고성산불▶1996년/1998년 북한 잠수함 동해안 침투(및 좌초)사건▶2000년 동해안 대형 산불▶2002년 태풍 루사▶2003년 태풍 매미▶2005년 낙산사 소실 사건▶1993년 태백시 한보에너지 통보광업소 광부 매몰사고(6명중 1명 생존) 등 잇따른 탄광사고 ▶1990년때 사흘동안 산간지역에 1~2m가 넘는 폭설이 수시로 내렸던 영동지역 폭설(1992년 ·1993년·1997년 등)▶폭설로 인한 대관령 등 옛 영동고속고도 차량 고립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건에는 국내 기상 역사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얘깃거리도 많다. 옛 기억과 추억을 되살리며 진실과 거짓이 버무려진 채 세상에 알려진 보도의 비화. 취재 과정에서 필자가 보고·듣고·경험한 웃픈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하나씩 풀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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