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근 강릉시장이 외국 출장 중 관 내 이·통장 500여 명에게 일일이 국제전화를 건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오르고 있다. 김 시장 측은 "코로나19 백신접종 격려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김한근 강원 강릉시장은 지난 15일 '2026년 ITS 세계총회(교통올림픽)' 유치 활동 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10일간 일정 중 5일이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이었다. 이 자가격리 중에 김 시장은 개인 휴대전화를 이용, 강릉시 소속 이·통장 503명 대부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시장은 출국 전 이·통장들 명단과 전화번호를 관계부서에서 챙겨 받아갔으며 지역 내 노인회장단 300여 명의 명단과 연락처도 함께 요구했다.
난데없는 시장 전화... 보이스 피싱 의심도
이같은 사실은 김 시장의 전화를 받은 이통장들이 보이스 피싱 등을 의심해 동사무소 등에 문의하면서 알려졌다. 강릉시의 한 공무원은 "당시 이통장들이 시장 전화번호가 맞냐, 보이스 피싱은 아니냐 등 문의가 면사무소나 동사무소에 여러 번 온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현직 시의원도 "이통장들이 시장에게서 전화왔었다며 나한테 연락이 많이왔다. 그래서 확인해보니 시장이 해외 출장 중에 이·통장들과 모두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전화를 걸어 "시장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지역 내 어르신들 백신접종 현황에 짧게 묻고 격려성 멘트와 함께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받은 이·통장들은 대체로 "뜬금없다" "선거 때가 됐구나"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람은 "시장입니다"라는 말에 "농담하지 말라"며 장난스레 받았고, 이에 시장은 "정말입니다"를 몇 번씩 반복하기도 했다. 통장 A씨는 "전화 한번 없던 시장이 뜬금없이 모든 이통장들에게 연락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쾌해서 일부러 모른 척한 것"이라고 밝혔다.
어떤 이는 보이스 피싱을 의심해 "당신이 시장인 줄 어떻게 아느냐"고 캐묻기도 해 시장이 진땀을 흘린 것으로 전해진다.
김 시장 측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 점검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김 시장은 업무용 아닌 개인 용도 휴대폰을 사용했으며 발신지가 해외였지만 국제전화로 표시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국제전화라는 사실을 알고 "굳이 그렇게까지"라며 놀라기도 했다.
현직 이장 A씨 역시 "(시장의 갑작스런 전화에) 의아해서 전화가 잘못온 줄 알았다. 어르신들 백신을 몇 퍼센트 맞았는지 간단하게 묻고 '날 덥고 그런데 고생이 많다'면서 1분2초 통화했다"고 밝혔다. 이어 "백신을 몇퍼센트 맞았는지 이통장은 잘 모른다. 공무원한테 전화하면 더 자세하게 알 텐데 이해가 잘 안갔다"면서 "또 (선거) 공천 때문에 그렇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같은 전화 돌리기가 불법은 아니다. 때문에 지역에서는 김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꼼수' 선거운동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지역 정치권 인사는 "김한근 시장이 선거가 다가오니 조급한 마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정말로 코로나19 백신접종 상황을 알고 싶었다면 관련부서 국과장이나 방역당국, 혹은 해당 동장에게 연락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해외에서 하루종일 전화에 매달렸다는 것은 선거운동 이외에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선거운동 하러 해외 나갔나" 비판도
국민의힘 내 강릉시장 후보군들도 역시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후보군들은 김한근 강릉시장을 비롯, 강희문 현 강릉시의회 의장(3선), 심영섭 현 도의원(4선), 김홍규 전 강릉시의회 의장(4선) 등이다.
한 인사는 "출장 열흘 중 절반 이상을 이통장들이랑 통화하는데 사용한 것인데, ITS총회 유치하러 간다더니 결국 선거운동 하러 해외 출장을 간 것이냐"며 꼬집었다. 또 "굳이 해외에서 국제전화로 수백명을 통화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후보군 역시 "김 시장이 시장직을 이용해 개인 선거운동 한 것"이라면서 "자가격리 5일간 500명을 통화하려면 하루종일 전화기를 잡고 살아야 하는데, 결국 ITS총회 유치 홍보 시간보다 전화관리 시간이 더 많았다. 시장의 관심은 엉뚱한데 있었던 것이라는 걸 증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한근 시장은 시민소통관실 관계자를 통해 "출장 중이지만 강릉시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전화를 한 것이고, 몇 명과 통화 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안난다"라고 해명했다.
강릉시는 김 시장의 인도네시아 현지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현재 김 시장은 귀국 항공기에 델타 변이 확진자가 탑승한 여파로 26일부터 또다시 자가격리 중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초선으로 당선된 김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 도전을 준비 중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한근 시장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자가격리자에게 지급되는 긴급식량 세트에 본인의 이름을 넣었다가, 시민단체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해 수사를 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