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논란이 된 강릉시 현직 공무원(8급) 기초수급자 선정과 관련해, 심사 당시 강릉시가 필수서류를 일절 받지않고 '직권'으로 처리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강릉시는 "절차상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
취재한 바에 따르면, 공무원 A씨는 2018년 8월 생계급여 신청 당시 필수서류는 물론 신청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이 직권으로 기초생계수급자로 책정해준 것이다. 현직 공무원의 기초수급 심사를 같은 신분인 공무원이 서류도 받지 않고 직권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A씨의 기초수급 심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인 2018년 8월 3일에 최종 처리됐다. 이같은 무서류 심사는 최종 결재 라인까지도 걸러지지 않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시행규칙 제34조제1항에 따르면, 기초생계수급 신청을 위해서는, ‘사회복지서비스 및 급여 제공 신청서’, ‘금융거래정보제공동의서(본인,부양의무자포함)’, ‘통장 사본’ 등 3가지 서류를 필수적으로 제출하도록 명시 돼 있다. 또 구비서류로 제적등본, 임대차계약서, 근로능력증명서, 소득증명 등 9가지 추가 서류도 거주지 읍면동을 통해 내야 한다.
이에 대해 강릉시 관계자는 지난 12일, 전화통화에서 "신청은 전화로도 가능하다"면서 "당시 서류는 없지만 전화로 신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7월에 의료급여를 신청한 서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참고로 한 것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업 관계자들은 "기초수급 중 의료급여와 달리 생계급여 심사에 는 소득인정액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장 심사가 까다롭다"면서 "혹 생계급여자의 경우 의료나 주거 등 차 후 심사에서 기존 서류를 참조하는 경우는 있지만, 지금처럼 거꾸로 해주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반인들은 각각 심사 할 때마다 서류를 모두 받는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사건 초기부터 논란이 됐던 A씨의 '소득인정액 0원' 산정 역시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직권반영’의 경우 자격심사과정 생략이 가능해, 담당자가 사회보장 통합 시스템(행복e음)에 나타나는 공적자료(건강보험, 고용보험 등)를 삭제한 뒤 소득액을 임의로 넣을 수 있다.
소득인정액은 적게 책정될수록 기초생계수급자에게는 유리하다. 기초생계급여의 경우 가구소득인정액을 제외한 차액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앞서 기초수급중인 공무원 A씨는, 휴직 기간중 4인 가족이 10여 차례이상 외국을 다녀오는 등, 도저히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이라고 볼 수 없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전국적인 공분을 불러왔다.
▲ 지난해 7월 공무원 A씨의 현 거주지인 원주시가, 현직 공무원인 A씨가 기초수급자로 책정되고 육아휴직수당까지 받고 있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보건복지부에 A씨 자격에 대한 문의를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자의적으로 일시적 소득중단된 경우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이 내용은 강릉시도 지난해 9월 받았다 © 김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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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A씨 기초생활수급제도로 보호해 줄 의무없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A씨는 국민기초생활수급제도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게 보건복지부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기초수급 대상 자격이 안되는 A씨가 ‘직권’처리 대상은 될 수 있었을까? 결론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1조제2항에 따르면, 기초수급은 본인의 신청을 전제로하는 ‘신청주의’가 원칙이다.
하지만 예외로 ‘직권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이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급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락되지 않도록 관할지역내에 거주하는 수급권자(생활이 어려우나 급여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신청서를 작성할 수 없는 자)에 대한 급여를 본인의 동의를 얻어 직권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저소득층을 적극 발굴해 적극적인 복지혜택을 주기 위함이다.
현업 종사자들은 공무원 신분인 A씨의 경우 직권 처리 대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 경우 직권처리 자체가 불가능하고, 만약 그렇게 했다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사회복지 담당자의 직권처리 권한은 생활이 어려운 가구 중 급여신청서를 작성할 능력이 안되거나 하는 복지 사각지대의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근로능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해당하고, 그럴 경우에도 본인의 동의서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멀쩡한 현직 공무원이 직권처리 대상이 된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꼬집었다.
A씨가 생계급여 서류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17일 A씨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원주경찰서는 관할 지자체에 기초수급 심사 당시 서류 일체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강릉시는 A씨의 기초의료, 주거, 교육급여 신청서류 각1부(필수서류)를 회신했지만, A씨의 기초생계급여 신청관련(필수서류 및 구비서류)는 '부존재'로 회신했다.
기초수급 선정에서 생계급여 신청 서류가 가장 많고 심사 절차가 까다롭다.
이같은 사실은 1월 초 김한근 강릉시장과 부시장에게도 보고됐다. 김 시장은 이 자리에서 "규정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11일에도 김 시장은 "공무원 수급자인 걸 알면 더 신경 쓰고 더 조사를 하고, 더 철저히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강릉시는 최근 반환명령 후 환수조치 하는 쪽으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가 기초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부정수급'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과 서류 부재로 환수시점과 환수금액 산정 기준이 애매해 행정절차상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게 문제다.
향 후 A씨가 법정대응과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해 강릉시가 패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때문에 내부에서도 "쉬쉬하며 덮으려고만 할께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조사가 먼저"라는 반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12일 전화통화에서 "지금 강릉시가 자체감사중이고, 또 행정소송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 감사위원회에 특별감사를 요청하거나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강릉시가 6개월 동안이나 사실을 숨긴채 시간끌기를 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자정능력을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